너는... 그러니까. 사토시는, 남자인가?

사쿠라이는 막 꽃신을 신겨준 상대를 아래에서 올려다 보며 물었다. 사토시는 새 신이 퍽 마음에 들어 발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는 중이었다. 희미하게 번져있는 그 웃음이 자신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고 생각하니 방 안을 온통 뛰어다니고 싶어진 사쿠라이는 벌렁대는 가슴을 억지로 누르면서 꿇어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토시는 빛을 받아 빛나는 금실로 새겨진 장식을 입술을 쭉 빼면서까지 집중해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사쿠라이는 점잖게 답하고 탁자 옆의 의자에 앉았다. 침묵을 견딜 수가 없는 사쿠라이에 비해 사토시는 마치 혼자 있는 것 같이 행동하고 있었다.

그래도 꽃신이 좋은 건가? 보통... 칼이나. 뭐. 말... 무예나, 그런 것엔 흥미가 없어?

없지는... 않은데. 춤이랑, 노래가 더 재미있으니까. 활은 다친다고... 안된대. 어머니는 그런 것도 안 갖고 있고.

칼춤이라는 것을 배우기야 했지만 사토시가 손에 제대로 된 칼을 들고 춘 것은 아니었다. 종이를 몇 겹이나 풀로 붙여 두껍게 한 후 칼 모양으로 어설프게 오려낸 장난감을 쥐고 움직인 춤이었다. 마음에 찰 만큼 신을 들여다 본 사토시는 침대에서 훌쩍 내려오더니 사쿠라이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어 옷자락을 또 살며시 들어 신을 보여주며 팔랑, 돌아보이고 과장된 인사를 했다. 예를 갖출 때 그리 하라며 행수에게 배워둔 것이었다. 큰 창으로 새되게 쏟아지는 햇살을 등에 지고 번져보이는 상대가 눈부셔 사쿠라이가 눈을 조금 찡그렸을 때 사토시는 말했다.

이제 집에 갈게. 신 고마워.

...어. 어딜 가?

정말 문으로 걸어가며 갈 것처럼 구는 사토시의 뒤에 대고 사쿠라이가 당황한 기색으로 말하더니 뒤를 쫓아 일어났다. 너를 아버지에게서 받았다. 이제부터 너는 내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 될 것을 짤랑이는 장신구며 옷으로 잔뜩 치장한 사토시의 눈이 어찌나 말갛게 순수했던지 사쿠라이는 차마 바른대로 고하지 못하고 입을 몇번 물었다 열었다.

네가... 지낼 곳은 이제부터 여기다. 네 집은 여기가 됐어. 그리고... 내가 네 정인이 될 것이고. 나는, 이 나라의... 세자다. 사쿠라이. 사쿠라이 쇼.

사쿠라이가 천천히 손을 뻗어 사토시의 손 끝을 잡았다. 사쿠라이는 사토시의 손이 자신의 손보다 조금 차갑다고 생각했지만 사토시의 손이 아니라 사쿠라이의 손이 뜨거운 것이었다. 사토시는 반쯤 문을 향해 돌려 서 있던 몸을 사쿠라이 쪽으로 돌렸다. 사토시의 표정은 조금 굳어 있었고 움찔 떨린 입술을 안으로 물었기 때문에 사쿠라이는 그의 기분이 몹시 언짢은 것이라 짐작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이외에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건. ...명령이십니까?

그제서야 써 오는 경어가 사쿠라이는 반갑지 않았다. 아바마마가 옆에 있고, 신하가 빼곡하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경연장에서 공부 내용을 읊을 때도 이만큼 긴장해 본 적이 그에게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쥔 손가락을 뒤로 빼내지 않는 것에 희미한 고양감을 느끼면서 고개를 젓는다.

나는 왕의 아들이지. 누구에게도 부탁해 본 적이 없어. 그래서 이게 잘못된 방법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주마. 내가 이 나라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바마마인 폐하 다음으로 많아.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들어주겠다. 네가... 내 곁에 있는 한은... 네가, 네가 춤추는 게 좋다. 목소리도 오늘, 지금 처음 들었지만. 목소리도 좋아. 웃는 모습도 사랑스럽다. 그러니까. ...널 내 곁에 두고, 사랑할 수 있게 해 주겠나. 이건, 이건 명령이 아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부탁…

사쿠라이는 그렇게 속 마음을 내놓은 것은 처음이었기에 덜컥 서럽고 무서워져서 목소리가 잠겨들어가는 바람에 말을 완전히 끝맺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눈 높이는 비슷했기에 사토시는 조금만 고개를 숙이면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잡힌 손 끝에서 전해지는 그 아이의 체온이 아주 작은 범위임에도 땀이 날 것처럼 뜨거웠고, 얼굴은 보란듯이 벌갰다. 코를 훌쩍이는 소리까지 들리자 사토시는 조심스럽게 자세를 낮춰 아래에서 사쿠라이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그럼 쇼군. 너는 날 사랑할 거야? 그건 내가 널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랑이야?

사쿠라이는 그만 다급하게 고개를 또 주억거리고 말았다. 영원히, 정말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름다운 새를 새장에 잡아 가둔 것 같은 고양감과 그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뒤섞인 채 허락했던 사랑의 형태는, 이제 영원히 같아질 일이 없을지라도. 사토시는 아이바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의 행동을 흉내내 얼굴을 양 손으로 가리며 자리에 앉아 몸을 웅크렸다. 앞으로 몇 밤이나 더 자면 그와 만날 수 있을까. 하고 사토시는 생각했다. 사토시가 고개를 끄덕였고, 사쿠라이는 사토시를 꽉 끌어안았다.




*


마츠모토는 겨우 어머니의 품에서 나와 사토시의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자객이 숨어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자신을 불러 옆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그의 어머니는 시들어가는 미색 뒤에서 앙탈인 체 하던 신경질적인 성격이 날이 가면 갈수록 칠이 벗겨져 나와 녹이 슬고 있었다. 급하게 사토시의 거처로 향하던 마츠모토는 니노미야와 긴 복도의 끝과 끝에서 마주쳤다. 이 마루를 지나가면 곧 사토시의 방이었을 터였다. 눈썹 한쪽을 신경질적으로 올리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다가선 둘 사이에서 빠르게 대화가 오갔다.

잠들어 있어요.

아이바가 재웠나?

응.

사쿠라이는 어쩌고 있는데.

폐하는... 뭐.

알잖아? 라는 식으로 눈썹을 찡긋거린 니노미야의 표정을 읽지 않아도 마츠모토는 알 만하다는 한숨을 쉬었다. 아직도 사토시에게 손을 대려는 머리 나쁜 작당을 하는 사람들이 남아있을 줄은 몰랐다. 누군지는 몰라도 곧 빌 자리에 대신 세워야 할 인재를 등용해야 할 것이고, 사토시의 기분을 낫게 해 주기 위해 또 대대적인 연회가 열릴 것이다. 그건 이 곳의 두 사람이 한동안은 바빠질 것이라는 의미와도 마찬가지로 통한다. 두 사람은 아무래도 좋았다. 사토시는 어렵지 않게 웃음을 보일 것이고, 시든다고 하더라도 사쿠라이와 세 남자의 대대적인 노력 아래 사토시는 다시 조심스럽게 필 예정이었다. 난간에 기대 선 니노미야가 밤하늘에서 뚝 떨궈져 나와 구를 것처럼 둥근 달을 올려다 보더니 손톱으로 난간을 두드리며 옅은 웃음을 혼자 그렸다. 방에 들어가 자는 얼굴이라도 보고 나올까 발 끝을 바닥에 구르며 고민하고 있던 마츠모토가 니노미야를 바라보았다. 그가 홀로 웃음 지을때는 사토시를 생각했을 때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니노미야가 멍하니 허공에다 말을 걸듯이 입을 열었다.

새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듣고 싶었거든...

마츠모토는 눈썹을 씰룩거렸지만 답했다.

달에 대한?

니노미야는 꼭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아 달을 향해 손을 뻗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뭐... 사토시는 어느 쪽이냐 하면 태양 쪽이긴 한데.

네 사람의 사는 이유는 그 하나로 모여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재능과 사랑스러움 아래 능청스러운 순수함으로, 나갈 길 없는 시간이라는 이름의 둘레 안에서 다섯명은 묘한 관계로 뒤엉켜 있었다. 하지만 사토시의 마음이 어디에 향해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아마 그 자신도 모를 것이다.





사토시는 궁에 적응하지 못했다. 춤이든 노래든 귀신같이 쫓아 잘 해내기만 하면 아무도 사토시가 뭘 하던 신경쓰지 않는 기방과 다르게 그곳은 오직 기예를 갈고닦기 위한 곳이 아니었다. 사쿠라이는 교육 중간에도 틈이 나면 문턱이 닳을 정도로 사토시가 지내는 곳을 드나들었지만 별다른 대화는 두 사람 사이에 오가지 않았다. 침묵 사이에서 차를 마시거나, 사토시가 색색의 과자나 과일을 입으로 나르는 걸 사쿠라이는 멍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사쿠라이가 가끔 노래를 청해 듣기도 했으나 사토시가 그럴 기분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으면 두번 다시 청하지 못했다. 사토시가 지내는 곳은 각별히 깨끗했고, 아름답게 꾸며졌지만 그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사토시는 주변의 궁녀들에게 전혀 정을 붙이지 못했을 뿐더러 어딜 나서 움직일라 치면 뒤를 바짝 붙어 따라오는 사람들을 불편해 했다. 식사를 할 때도, 잠을 잘 때도. 심지어 용변을 볼 때도 그들은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사람이 항상 붙어 있는건 그에게 매일같이 찾아오는 세자-사토시는 그를 이름으로 불렀다-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아하는 눈치라 사토시는 어디에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삭혔다. 벽을 향해 말하고 있어도 자신이 말하는 걸 듣는 사람이 있었다. 장식물인 듯 공기인듯 그곳에 있어 방심하기 좋지만 그들도 사람이지 않나. 사토시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이 제일 무서운 법이라며 매일같이 행수가 타령을 해서 그런것인지도 몰랐다. 아무리 날이 선 재능을 뱃속에 품고 예술에 대한 욕구로 목이 말라 있다고 해도 사토시는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계절이 두번 바뀌어 궁 안에 하얗게 서리가 앉고 눈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 사토시의 키는 조금 컸지만 몸은 더 말라갔다. 식사도 잘 하지 않고, 단 것이나 과일만 입에 댄다는 사토시를 위해 그가 지내는 궁에는 다과상이 떨어지질 않았고, 항상 색색깔이 화려한 과자와 과일이 가득했다. 포도알을 하나하나 뜯어 앞니로 깨물어 먹으면서 여느때와 같이 사쿠라이와 함께하는 저녁 시간을 보내며 사토시는 발을 흔들었다. 그 날의 신발이 아직 사토시에게 신겨져 있었다. 그걸 볼 때마다 사쿠라이의 표정이 흡족해 지는 것을 사토시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 게 사랑인걸까, 누군가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을 주고 그걸 갖고 있는 상대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런 표정을 짓게 하는 게. 사토시는 그 나름대로 사쿠라이를, 그리고 그의 사랑을 이해하려 조금 더 생각을 이어가 보았다. 언덕배기에서 아이바와 했던 약속을 잊지는 않았다. 그게 사랑이라고 말하는 감정인가. 나는 그에게 입맞춤 밖에 준 일이 없는 데다가 그걸 받은 사람은 지금 여기 없어서 확인할 수가 없는데. 밧쨩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사토시는 생각을 멈춰버렸다. 과일로 달아진 입을 차로 축이고 입술을 핥았다. 눈이 섞인 바람소리에 창이 덜걱거렸다.


지내는 데 불편한 것은 없나? 방이 춥지는 않고? 아랫것이 무례하게 굴면, 참지 않고 말해도 좋아. 네가 지내는 데 불편함이 없었으면 한다.


사토시. 차마 뒤에 이름을 부르지는 못하고 사쿠라이가 헛기침을 하며 퍽 다정하게 눈 앞의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 아름다움에 걸맞는 이름이야.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네 하는 모습만 바라보고 있어도 좋을 것 같아. 일생 만날 일 없을 것 같았던 연모하는 이를 만나, 그 이를 제 곁에 두었다는 기쁨에 가려 사쿠라이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잘 잔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토시의 안색이나, 화려한 옷 아래 가려진 마른 몸 따위를. 궁에 들어온 이후로 제대로 된 춤도 추지 못하고 악기도 만져보지 못해 사토시의 몸이 굳어가는 것 따위에 대해서. 기방에서 지낼 무렵에는 한여름의 대청마루, 가을 오후의 나무 등치, 봄의 꽃나무 아래서든 머리만 대면 쉽게 잠에 들었던 사토시는 최근 새벽같이 깨어있다가 해가 뜰 무렵에야 겨우 두세시간 눈을 붙이고 하루종일 멍하니 앉아서 졸기를 반복했다. 시들어가는 꽃 같기도 했고 병든 새 같기도 했다.


악기 소리가 듣고 싶어.


한계에 다른 사토시가 겨우 쥐어짜낸 말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 아침 문안 인사를 여쭙자마자 사토시에게 달려온 사쿠라이는 창 밖의 새 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속삭인 사토시의 손을 이끌고 바로 악기가 있는 곳을 찾았다. 악기를 만들고, 연주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라 안팎의 행사가 있을 때면 꼭 거쳐가야 하는 곳이었다. 담 안에 들어서 북소리와 현 소리를 듣자마자 사토시의 표정이 눈에 띄게 나아졌다. 세자를 알아보고 머리를 조아리는 이들에게 연주를 보고 싶으니 준비하라는 명을 대뜸 내린 사쿠라이는 즐거이 안으로 들다가 그의 교육을 담당하는 신하가 급하게 수염을 날리며 쫓아와 발치에서 사정하는 바람에 한시진 안에 돌아오겠다며 잘 뫼셔야 한다는 엄포를 놓고 돌아가 사토시는 그 큰 곳에 혼자 남았다. 아직 해도 중천에 걸리지 않은 이른 오전 시간이었지만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쿠라이의 명이 떨어져서 마른 바닥에서 먼지가 일 정도로 그들은 달려야 했고, 그곳에서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이는건 니노미야였다. 현의 재료가 되는 명주실을 한아름 안고 잰 걸음으로 길을 가로지르던 니노미야는 우두커니 선 사토시를 제법 거리가 있는 곳에서도 알아보고 보고 느릿하게 멈춰섰다. 그러고 대뜸 옆으로 지나가던 이에게 실을 확 안겨주더니 사토시에게 큰 걸음으로 다가와서는 대충 구색만 갖춘 것이긴 하지만 고개를 숙여 예를 갖췄다.

니노미야 카즈나리. ...라고 합니다. 그, 여긴 나라의, 곧 궁의 음악을 담당하는... 곳으로. 제가 책임자나 마찬가진 겁니다만. 대외적으론 다른 어른이 하고 있어서, 아. 세자 전하가 명하신 것 들었습니다. 좀 어수선합니다만 편하게 둘러 보고 계시면 금방 자리를… 마련할테니.

긴장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니노미야의 말투와 행동에서 초조함이 엿보였다. 사토시는 어쩐지 눈에 익은 얼굴에 입을 방긋거리다 겨우 천천히 말을 풀어놓았다. 꼭 울 것 같이 불안한 그 모습에 니노미야의 행동은 더욱 어색해지기 시작했지만 악기를 연주해 볼 수 있겠냐는 사토시의 청에 무리없이 그를 안쪽으로 안내해 여기저기 나무와 돌이 쌓인 디귿자 건물 구석에 놓인 정자에 작은 다과상을 펼쳤고, 준비된 차가 따라지자 현악기를 가져왔다. 비파, 아쟁, 해금 따위의 악기는 어느 것이나 윤이 나고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사토시는 현 하나하나 아주 섬세한 공예품을 다루듯 손 끝으로 악기를 쓰다듬다가 비파를 안아들었다. 어린 사토시가 들기엔 조금 큼직할 법도 했지만 정자의 난간에 걸터앉아 무릎에 비파를 올려놓은 사토시가 줄을 퉁기자 공기가 떨리며 그 색을 달리한다.




*



규수? 내가?

사토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밤바람이 불자 연꽃들이 연못 위를 줄지어 부유했다. 별도 달도 비치지 않아 칠흑처럼 어두운 밤연못의 위에서 희미하게 빛을 내고 있는 건 꽃송이가 아니었다. 연못 한가운데 지어진 정자 안에서 니노미야의 말에 사토시가 환하게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술상을 가운데 두고 맞은편에 앉은 니노미야는 무릎을 쳐 가면서 말을 잇는다. 마츠모토도 그 옆에서 낮은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래요, 어디 그 때 폐하에게 어떻게든 제 딸을 짝지어 보려고 안달난 귀족 집안이 한둘이었어야지, 나는 영락없이 그 중에 선택받으신 귀한 집 딸인 줄 알았다구요.

나 그때 연회에서 춤 췄었는데.

그걸 못 봤어요. 나는 다른데 있었거든. 폐하는 거기서 사토시한테 반했잖아? 준도.

마츠모토는 부정하지 않았다. 고개만을 끄덕이더니 잔 안의 술을 입에 털어넣었다. 사토시의 뽀얀 웃음이 애정을 담고 마츠모토의 얼굴에서 머물렀다가 니노미야에게로 옮겨왔다. 그 시선에 눈썹 언저리를 긁으면서 상체를 뒤로 쭉 편 니노미야는 손을 허리 뒤로 짚어 몸을 받쳐 앉은채 연못을 바라보았다. 그 때를 떠올리는지 몽롱한 얼굴이 점점 꿈을 꾸는 것처럼 황홀해져 갔다.

당신, 소문만 자자하고, 전혀 밖에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니까... 나는 그 때 만났던 선녀가... 그 사람일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그때 만났을 때는 뭐야, 선녀도 뭣도 아니었구나. 하고 실망하고 있었더니 대뜸 비파를 들고 연주하는데...

말해 무엇하냐는 것처럼 헤죽헤죽 웃음으로 말을 마무리하며 니노미야가 사토시의 옆으로 몸을 옮겨 앉았다. 그대로 사토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머리를 몇번 부비면서 눈을 감는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때의 선율 하나하나, 현을 누르던 손 끝까지 전부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데. 당신은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곡조의 주인이고, 나는 당신만을 위해 악보를 채울것인데. 하지만 나는. 니노미야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다정한 손길을 느끼면서 괜한 어리광이 섞인 목소리를 내며 눈을 감은 채 웃었다. 당신을 누구와도 나눠 갖고 싶지 않아.



*


내가 누구라고 생각해?


사토시가 한참 동안이나 연주하던 비파를 내려놓고 그 긴 연주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니노미야에게 물었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니노미야는 잠시 망설이다가 세자의 비가 되실 분이 아니냐며 대답했는데, 사토시는 아주 묘한 표정이 되었다. 나는 누군가의 것이 되어야 하는 사람인걸까? 기방에서 나고 자라서, 내가 배운 재주가 세상의 모든 것인 줄 알았는데. 그는 내가 춤추는 걸 보고 날 사랑하고 싶었대. 그럼 나는? 나는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내 재주를, 나라의 세손께서... 사랑해 주니 그러마고 하고 사랑받아야 하는 걸까. 나는 누군가의 것이 되어야 할까. 기방 출신이라는 말에 조금 놀랐던 니노미야는 이내 그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비파를 돌려주는 사토시의 손을 잡고 그 악기는 가져가도 좋다고 말했다. 사토시는 조금 망설이는 눈치로 그래도 되냐며 니노미야에게 물었는데, 니노미야는 오늘 중 가장 그 나이 다운 웃음을 보여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면서 다시 입을 연다.


하실 수 있는 걸 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시면 됩니다. 그러셔도 돼요. 제가 보장합니다. 저는 이 나라에서 가장 보는 눈이랑 듣는 귀가 좋거든요.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한다면 이 나라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건 왕도 마찬가지예요. 눈이 썩은 옹이 구멍이 아니라면 당신이 해낼 수 있는 것을 함부로 할 수는 없어. 오랜만에 연주를 했을 테니 피곤하시죠. 안색도 안 좋고. 세자 저하한테는 제가 말해 둘 테니까 이제 그만 돌아가세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예를 표한 사토시는 자신의 궁으로 돌아갔고, 뒤늦게 자리를 비우고 사라졌던 사쿠라이가 돌아온 것을 맞이한 니노미야는 다른 이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사쿠라이에게 조용히 간언을 올렸다. 둘이 지금보다 더 어렸을 무렵부터 궁에서 자주 뒤엉켜 놀았던 적이 있었기에 할 수 있는 말들이었다.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고 싶으신 거라면 그 분의 초상화라도 그려 침대에 끼고 사시면 됩니다. 그건 늙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으며 싫은 소리도 안 하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세손이고 그 분은 초상화도 뭣도 아니지 않습니까. 자신의 자리를 자각하시고 상대에 대해 아셔야 합니다. 예? 그 분을 춤 좀 추고 노래하는 인형쯤으로 생각하시면 안된단 말입니다. 당신에게는 여기가 집이고 태어났을 때 부터 자라오신 곳이니 신경 써 본 적도 없으셨겠지만 그 분은 그 분이 아시던 모든 것이 하루 아침에 뒤바뀐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제 발로 궁에 들어오고자 한 다른 사람과도 달라요, 당신의 고집으로 데려온 분이면 그 모든 것에 책임을 지셔야지요.


다른 이가 들었으면 경을 쳤을 무례한 말들에도, 분해하는 기색 하나 없이 고개를 순하게 끄덕거리는 자신의 친우, 그리고 나라의 세자를 보며 니노미야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처음으로 손에 쥐게 된 것 하나를 어쩌지 못하고 그렇게 만드신다면 앞으로 나라는 다스릴 수 없으실 겁니다. 돌아가서 공부를 좀 더 하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저도 이만 일이 바빠서 가 보겠습니다. 니노미야는 그렇게 사쿠라이를 내시의 편에 붙여 보냈고, 눈 앞을 왔다갔다 하는 손가락을 떠올리며 악보가 가득 쌓인 자신의 방에 또 처박히기 위해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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